대중교통시설을 이용하다보면 홍보 게시판을 통해
기관 및 단체에서 주최한 행사 또는 이벤트 소식을 접할 수가 있다.
이 글에서 참여 소감을 풀어놓을 전국민 받아쓰기 대회도 그러한 경로로 알게 되었다.
포스터를 마주하고선 강한 흥미가 일었다.
우리말 우리글을 바르게 쓰자는 자세로 언어 생활을 해나가는 나이기에
나의 국문법 지식은 얼마나 축적되어 있으며 또 얼마나 정확한지를 알고 싶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어린 시절에 담임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낱말을
받아쓰기 공책에 꾹꾹 눌러쓰던 국어 수업시간,
시험 후 빨간 색연필로 채점이 된 공책을 받아들던 때의 기분,
그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기도 해서 참여하기로 했다.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시험은 극히 드물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제외하고는 전국민을 시험장으로 불러 모으기란 불가능하다.
우리 고유의 문자와 글을 익힌 국민이라면 모두가 참여할 수 있으며
제시한 안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공통적인 척도가 있다는 것은
한글이 국민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소통의 매개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상이 전국민이라 하여 실지로 모든 국민에게 수험의 의무가 지워진 건 아니라
참여인원은 제한적이겠지만, 실로 대단한 일이다.
서두가 길어졌지만 대회 당일 수험을 통해서 이 대회에서 받아쓰기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 속의 받아쓰기 시험과는 확연히 다름을 깨달았다.
9월부터 새롭게 나의 생활 계획표에 추가된 일정이 있어
오전에 그 일정을 소화하고 나니 이동 시간이 촉박하여 시험 시작 전에 간신히 시험장에 도착했다.
좌석을 찾아 앉으니 진행 요원이 볼펜과 수정테이프를 건네주었다.
시험 감독관으로부터 응시자 주의사항을 들으며 대회 규정 안내지를 읽었다.
전 수험자에게 답안지와 연습지가 한 장씩 배부되었는데,
낭독하는 시험 문항의 청취 시간에는 답안지를 작성할 수 없었다.
모든 문항은 연습지에 받아적은 후 답안지에 옮겨 써야 했다.
답안 작성 시간은 15분. 나는 그 시간동안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전혀 예상치 못한채
어떤 문장을 듣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그저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아이처럼 천진하게 앉아 있었다.
시험은 총 10문항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문장을 3회씩 낭독해주도록 했다.
문항당 편성된 문장의 길이는 상당히 길었고, 과반의 문항이 두 개 이상의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그러했기에 전체 문장을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듭해 나오는 낭독 방송에 최대한 귀를 기울여 앞 회차에 놓친 부분을 보완해나가야 했다.
나에게는 구성 낱말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규정보다는 외래어 표기법이 모호했다.
장문의 문장을 받아쓰는 일도 대단히 힘이 드는 작업이었지만
받아쓴 문장을 답안지로 옮기는 일도 그에 못지 않은 집중을 요했다.
20여개에 달하는 문장을 문법 규칙에 어긋나지 않게 원고지에 작성하기에 15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타이머의 알림 소리가 울릴 때 나는 8번 문항의 문장을 옮겨 적고 있었다.
펜을 쥔 손에 어찌나 힘이 실렸던지 필기구를 내려놓고 나니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전 단계를 완료하고 원고지에 쓰기만 하면 되는 문항을 흘려보내려니 적잖이 서운했다.
'작성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 법!
미련을 떨쳐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활동지로 떠나기로 했다.
시험장을 나와 국문법 지식을 겨루며 열띤 경합이 벌어지던 강의실을 뒤돌아보았다.
이번에 치뤄진 시험은 지역 예선전이라, 1차 시험을 통과한 응시자들은 본선에 진출한다.
본선 대회는 10월에 경복궁에서 개최될 예정이라 한다.
답안 작성을 완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선 결과에는 기대를 걸고 있지 않지만,
578돌을 맞는 한글날을 기념하여 열린 행사이니만큼
우리 글에 대한 사랑으로 보다 많은 국민들이 바른 글 사용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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