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외 활동

일평생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참의사 장기려

by 나만의 빛 2025. 1. 21.

 

소속 지역봉사센터에서 안내문자가 한 통 날아들었다.

전년도 기준 우수 활동가로 선정되어 가맹점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괜스레 흐뭇했다.

그 소소한 선물을 받게 될 소식이 전해지고 나니

이번 해의 봉사활동을 시작해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자원봉사 종합포털에 접속해서 활동처를 알아보던 중,

장기려 더나눔센터에서 볼런투어 참가대를 모집하는 것을 보았다.

예전에 이태석 신부 기념관에서 이루어진 체험에 참여한 경험이 있기에

메모리즈 부산 체험 코스의 일종인것을 알았다.

 

 

「메모리즈 부산 볼런투어(Voluntour/자원봉사여행)

 부산의 명소 중 자원봉사에 대한 상징성과 의미 있는 곳을 발굴하여,

투어를 통해 자원봉사 정신을 일깨우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

 

 

기념관 관람을 떠나기 전 발자취를 따라가볼 인물의 약력을 알아보자.


 

가난한 환자들의 의사

성산(聖山) 장기려

1911~1995

평안북도 출생

우리나라 최고의 외과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바보 의사, 작은 예수 

무료 진료 기관인 복음병원을 설립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

막사이사이 사회봉사 부문 수상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액


장기려기념 더나눔센터는 초량동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이제는 관광명소가 된 이바구길의 중턱쯤에서 센터로의 길이 시작되기에

부산항이 내다보이는 전망을 마주할 수 있었다.

 

주택가 담장을 따라 한적한 길을 5분여 걸어가다보면

주황색 처마를 얹은 건물과 맞딱드린다.

명판 역시 '장기려 기념관' 라고 주황글씨로 쓰여있는데,

중앙의 사무실을 기준으로 좌측 날개가 기념관이고, 우측 날개는 커뮤니티 센터이다.

한 층 내려가면 어린이들의 놀이를 위한 공간 들락날락과 작은도서관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활동 전  30분 이상 여유를 두고 도착을 하여서

시설 전체를 둘러보고도 시간이 남았다.

작은 도서관 앞 쉼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기념관에 입장했다.

 

신청 인원이 거진 모이자 해설사가 참의사 장기려의 역사 속으로

투어를 떠나기 위해 간단한 자기 소개를 시작으로 이야기의 문을 열어젖혔다.

사랑과 봉사 정신의 소유자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장기려 박사는

출신이 평안북도, 즉 이북 사람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북 땅에서 식솔들을 거느리며

전도유망한 의사의 길을 걸었던 박사님은

동란의 틈바구니에 휩쓸려 남으로 피난을 떠나게 된다.

잠시 피신만 하려던 게 휴전 상태로 남북으로 분단이 되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이남에 정착하여 생활하게 되었단다.

 

부산 영도에 천막을 세워 진료를 개시하여 복음병원을 개척하였고,

그 의료원은 곧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전신이다.

북유럽 국가의 의료보장제도를 본따 의료보험제도를 처음 도입한 이도 장박사님이다.

그 외에도 간암 절제술을 고안함으로써 확고부동한 자취를 남기는 등

당대 최고 의술을 자랑하던 실력파 의사였다.

 

의학 기술적인 측면에서 본 장기려 박사가 그러하다면

 

인간적인 측면에서 장기려는 환자를 늘 우선시하며

그들의 고충까지도 살핀 인정 많은 인물이었다.

 

소유에 연연하지 않은 채 살림은 단출한 것이 좋다며

병원 옥탑방에서 생활하며 본분을 다했다는 이야기,

경제적인 곤란으로 퇴원 수속을 밟지 못하는 환자를

뒷문을 열어 남몰래 보내주었다는 이야기 등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이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리울 때마다 더욱 환자를 돌보는 일에만 매진하였다는 그.

북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특례를 주겠다는 정부의 제안을 뿌리치고 

이산 가족이 상봉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내가 그라면 과연 그리 할 수 있었을까?'를 자문해보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실로 위대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며, 그의 업적에 존경심이 절로 일었다.

 

 

언제고 시간을 내어 자녀들을 데리고 방문해볼 것을 추천한다.